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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영어 공부

영어를 안다는 것

by 디지털 구루 2021. 7. 25.

몇 년 전 루마니아에서의 일이다. 드라큘라 백작으로 알려진 루마니아의 브란 성(成)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숙소 주인장인 할아버지가 걸고 있던 명찰이다. 학회에서나 보던 이 큰 명찰에는 6개의 국기가 그려져 있었다. 여쭈었더니, 자신이 구사할 줄 아는 언어의 국가를 나타난다고 했다. 4개는 유창하게, 2개는 기본적 소통이 가능하다 하신다. 이런 다중언어 능력자를 노르웨이 베르겐의 관광 안내소에서 또 만났다. 영어로 우리를 도와주시던 자원봉사 아저씨는 우리 뒤로 들어오는 노부부와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하는게 아닌가. 곧이어 들어온 배낭여행자에게는 독일어로 설명했다. 그렇게 외국어를 다양하게 구사하다니 정말 대단하시다고 말씀드렸더니 손을 내저었다. 자신은 대단한 게 아니라며, 같이 봉사하시는 어떤 아주머니는 7개 국어를 하신다고 했다.   

 

유럽에서 이런 다중언어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유를 내 아이들의 성장에서 엿보았다. 공부하는 엄마를 따라 미국으로 간 아이들은 낯선 영어의 소용돌이에서 몇 개월을 지냈다. 시간이 흘러 또래 아이들 수준으로 영어를 할 수 있게 되자, 공부하는 아빠를 따라 유럽으로 가야했다. 겨우 극복한 영어를 두고 독일어로 생활해야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어린 나이에 또 한 번의 격변을 겪을 것이 안쓰러웠다. 그런데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독일어로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무난했다. 독일어 학교에 연착륙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미 유창한) 영어와 매우 유사하다는 것, 그리고 한국어와 영어를 아는 아이들이 체계로서의 ‘언어’에 대한 개념을 가진 상태라는 것이다. 당시 1학년이던 막내가 하는 말이 ‘뭔지 알겠어. 우리말이랑 비슷해(Oh~ I got it. It’s like my language).’ 영어로 생활한 지 3년 만에 영어를 우리말이라고 인식한 것이 놀라고 걱정되었지만, 독일어 배움의 고통은 영어보다는 덜하겠구나 싶어 안도했다. 어떤 언어에 능숙하다면 다른 언어를 배우는 것은 덜 고통스럽다. 특히 아는 언어와 알아야하는 언어가 비슷할 경우는 더욱 그렇다.

 

때로는 오랫동안의 학습이 없이 언어를 이해할 수도 있다. 노르웨이를 여행한 후, 말괄량이 삐삐를 만나기 위해 스웨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에 갔을 때다. 누가 봐도 관광객인 우리 가족은 식당에 가면 영어로 된 메뉴를 받는다. 그런데 점원이 실수로 스웨덴어로 된 메뉴를 건넸다. 노르웨이에서 몇몇 음식 단어가 익숙해진 아이들은 스웨덴어로 된 메뉴를 보더니 바로 닭고기, 돼지고기, 구운 것, 튀긴 것 등등을 골라 주문을 했다. 스웨덴어로 주문받은 점원이 자연스럽게 스웨덴어로 우리에게 대꾸를 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생전 처음 보는 스웨덴어 단어를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전날까지 노출된 노르웨이어와의 상당한 유사성때문이다. 노르딕 언어는 서로 너무나 비슷해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말을 해도 어느정도 소통이 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중언어자라는 것이 늘 좋은 것으로 인식되는 것일까? 때로는 외국어를 배우면서 자신의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모국어를 배울 기회가 없어진 경우, 혹은 자신의 모국어가 이민 간 나라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경우다. 후자의 대표적인 경우가 미국에서의 스페인어를 비롯한 소수 언어(영어가 아닌 언어) 사용자들의 경험이다. 트럼프 전 미국대통령이 선거 유세에서 ‘미국은 영어 국가이니 영어로 말하라’고 했다. 이것은 그가 지닌 ‘영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미국인’들에 대한 부정적 태도인데, 지지자들이 크게 공감한 부분이다. 그가 대통령이 된 이후, 많은 ‘미국인’들이 모국어 또는 부모님의 언어(heritage language)로 이야기하다가 공격받거나 경찰에게 신분증 제시 요구를 받은 일이 많아진 이유다. 영어에 능통한 미국인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언어를 말한다는 것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절망적인 일일 것이다. 사실, ‘미국은 영어를 사용하는 국가이니 영어로 말하라’고 강요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는 없다. 미국은 공식 언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nglish Only(미국에서 영어만 사용하자는 주장)’를 옹호하는 이들은 이민자들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는 이중언어 교육을 멈추라고 외친다. 이런 정치 사회적 분위기라면 다중언어자임을 숨기고 싶을 것이다. ESL 강의를 하던 어떤 미국 친구가 그랬다. 고등학교때 스페인어 수업을 들었지만, 실생활에 필요없는 언어를 열심히 할 이유가 없어서 공부를 안했다고. 그 친구는 자신의 강의를 듣던 외국인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았을까. 그 친구는 히스패닉(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인구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일하고 있다.

 

모든 소수언어 사용자가 이런 상황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 만난 이민 3세대인 친구의 이야기이다. 약간의 중국어와 약간의 프랑스어를 할 줄 알던 이 친구는 중국에서 이민 온 할아버지와 프랑스 태생인 할머니가 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러브스토리를 말하던 중 두 분의 영어실력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프랑스어가 모국어인 할머니가 할아버지보다 더 잘 하실거란 막연한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창한 영어를 하시는 분은 할아버지이고, 할머니는 그날까지도 프랑스어 엑센트가 심한 영어를 하신단다. 지금이야 중국의 경제적 부상으로 인해 중국어를 배우려는 미국인이 늘어났지만, 할아버지가 미국에서 사시는 오랜 세월동안 중국어는 시끄럽다고 눈총받는 언어였다. 반면에 프랑스어는 예나 지금이나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하니 할머니가 굳이 영어를 열심히 배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게 그 친구의 설명이다. 내 아이들의 독일어 배우기가 덜 힘들었던 데에는 독일어 친구들이 가진 ‘영어’와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가 한 몫 했다.

외국어를 잘 한다는 것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된다. 그 상황은 또 외국어 습득에 영향을 미친다. ‘유럽의 어디에서는 시장 아주머니도 영어를 잘한다더라, 그 나라의 교육법을 배워 실천하자’라는 주장은 역사, 문화, 환경, 정치 등 교육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조건을 간과한 말이다. 타국의 좋은 방법이 우리나라에 와서 반드시 효과적일 수는 없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외국어를 잘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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